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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속삭임


찡긋 웃는다

 

정해영

 

기차 여행을 하다

이야기도 시들 해 질 무렵

그와 내가 가방에서 꺼낸

우연히 표지가 같은 책

 

그는 앞부분을,

나는 절반 이상을 읽고 있다

나란히 앉아

그는 앞에 있고

나는 뒤에 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유희처럼 슬픔의

씨를 뿌리는 주인공의

젊은 날을 지나고 있고

 

그것이 불행의 열매로 무르익어

따지 않으면 않되는 노년

내가 지나가고 있다

 

그는 가끔

고개를 들어 푸를 하늘을

눈부시게 올려다 보고

 

나는 계속 아래를 보고

눈시울을 붉힌다

 

가끔씩 우린 마주보고

찡긋 웃는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시작과 결말이

인사를 한다

 

또아리를 튼 생의

머리와 꼬리가 슬쩍 스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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