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분홍 / 전 영 숙(969회 토론작) > 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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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분홍

 

전 영 숙

 

종일 비 맞는

자귀꽃

 

피할 수 없는 생활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는 중인데

 

분홍 세필이

전부인 세간살이

엉겨 산발이다

 

하필 지금

물이 가장 많은 때

화사한 살림을 차렸는지

 

누구도

맑은 날 궂은 날 가려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젖은 분홍은

간 밤 눈물에 얼룩진

사랑을 잃은 편지 같고

 

단 하루라도

살아 본 듯 살다 가야겠는데

또 다시 긴 장마 속이다

 

아름다움을 멍들게 하는

저 속없는 빗줄기에

꽃 다 떨어져

그 하루도 빼앗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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