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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양녀 일기

 

딸은

의논도 없이

나를 그녀의 양녀로

입양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릴 때

내가 저에게 일러주던 말을

다 하고 있다

 

전화를 할 때도

어미만이 할 수 있는

애틋함 살가움을 담아 보낸다

전화기를 타고

잔잔하게 실려오는 사랑

 

주저 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여러 번

 

너는 아직도

내가 챙겨야 할

내 새끼라고 큰 소리치지만

어느새 훌쩍 자란

그 애 앞에선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어미 옆에

바짝 붙어있는 송아지 같이

점점 그녀의 딸이

되어가고 있다

 

 

     어떤 꽃밭

 

이웃집 할머니는

올해도 살구를 주셨다

할아버지 떠나고

돌봄을 받지 못한 살구는 

알사탕만 하고

때깔도 그랬지만

맛은 그대로였다

 

말없이 건네주는 마음

보이지도 않고

무게도 없지만

자꾸 받으니 쌓였다

 

오랜 세월

따뜻한 마음

모여서 생긴 그곳

수수한 꽃들

사철 피고 지는

꽃밭이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는

나 혼자만 아는

세상에 하나뿐인 꽃밭

 

 

 

   때로는 할 말 없을때도 있다

 

해질녘

수술실 앞은 한산했다

그 앞을 지나다

오도카니 앉아있는

그녀를 만났다

 

남편이 수술중이란다

 

갑자기 쓰러지면서

말문도 닫혀버리고

감당치 못해

10년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한다

 

옷이며 소지품은

나눠준지 오래라

놓을 듯 붙들고 있는

희미한 기억의 실오라기만이

그가 가진 전부라고 한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등만 두드려주고 돌아서는데

그녀의 가냘픈 어깨와

젖은 눈빛이

등 뒤에

묵직하게 매달렸다

 

 

 

   겨울, 선풍기

 

바람이 쌀쌀해졌다

여름에 살갑던 선풍기가

걸리적거린다

 

그녀는

오래전 아들네와

살림을 합했다

 

살림도 하고

손주 둘을 기르는 일로

그녀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손주들은

돌보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고

며느리는 퇴직을 했다

집안에서의

역할이 없어지고

몸은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앉은 자리

여름 지난 선풍기의 자리

 

여름이 오면

선풍기는

거실 중앙으로 모셔질 것이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는데

그녀의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채색된 시간

 

오랜만에 둘이

시간을 보냈다

 

콩나물 무침

된장찌개 같은

이야기들이 풀려 나왔다

 

세 꺼풀을 벗겨야 먹을 수 있는

알밤 이야기와

붙잡고 있어도

미끄러져 내려가는

꿈 이야기도 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을 데우는

모닥불이 되기도 하고

합쳐져 한 줄기로 흐르는

강물이 되기도 했다

 

가만가만 지나가는 시간

 

돌아보니 곱게 채색된 시간이

긴 길이 되어

우릴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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