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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조씨의 [눈바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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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바람 / 신상조

구름은 제 사연의 무게로
겨울 산에 내린다.
숲의 깊은 침묵
바위의 무심에 지치면
새파란 입술의 삐친 눈바람
세상으로 달려온다.
전선줄도 희롱하고
도시의 먼지 낀 창문도 흔들다가
열없으면 괜스레
헤어지는 연인들을 건드린다.
힘겨워 책임질 수 없던 남자
기다릴 수 없던 여자 
건드리고 건드리다 다시
눈물로 승천한다.
(03/02/11)
*눈바람〔눈ː빠람〕: 눈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
-------------------------

작품 아래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놓은 것을 보니 <눈바람>의 뜻은 <눈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으로 되어있네요. 바람이 눈과 함께 분다면 소위 설한풍(雪寒風)으로서 매우 차갑고 비정하게 느껴지겠지요. 그래서인지 화자는 그것을 <새파란 입술의 삐친 눈바람>이라고 쓰고 있군요. 매우 실감나는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입술이 새파랗게 될 정도로 삐쳤다면 그야말로 차가운 기운 때문에 함부로 농담도 건넬 수 없을 것 같아 긴장이 됩니다. 독자를 긴장시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 성공적이지요. 그럼 앞에서부터 읽어봅시다.

지금 구름이 겨울 산에 내리는데 숲은 깊은 침묵에 빠져있습니다. 그런데 (눈바람은) <바위의 무심에 지치면/ 새파란 입술의 삐>쳐서 <세상으로 달려온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즉 눈바람은 <바위에 무심에 지치면> 입술이 새파랗게 삐쳐서 달려온다는 것입니다. 좀 이상합니다. (눈바람은) <숲의 침묵>과 <바위의 무심>에 <지치면> 세상으로 달려온다고 하니, <지치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는 모양이지요? <지치면>이라는 조건이 어색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지친> 상태로는 <달려>오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세상>으로 달려온다는 것도 좀 어색합니다. 눈바람이 머물러 있던 겨울 산이나 숲은 <세상>이 아닌가요? 그러니 <세상>이란 말은 부정확해 보입니다. 차라리 숲이나 산에서 <도시>로 내려오는 게 아닌지요?

또한 <삐쳐서> 달려온 눈바람이 전선줄도 <희롱>하고 <괜스레> <헤어지는 연인들을 건드리>는 것도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작자도 무엇엔가 입술이 파랗게 될 정도로 <삐쳤다면> 남을 <희롱>할 기분이나 <괜스레> 남을 <건드리>겠습니까? 희롱이나 괜스레 건드리는 행위는 여유가 있을 때 장난을 거는 것일텐데 <삐친> 상태에서 그럴 기분이 나겠느냐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시의 리얼리티를 깨뜨리기 때문에 그 신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인은 감정의 미립자까지도 <정확하게> 묘사하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눈바람>이 주는 차갑고 급박한 정서가 <희롱>이나 <괜스레 건드리는> 행위로 나타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눈바람이 왜 하필 <힘겨워 책임질 수 없던 남자/ 기다릴 수 없던 여자>를 <건드리는지>, 그리고 왜 <다시 눈물로 승천하는지> 독자인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으니 공감할 수 없지요.

이 작품에서 작자는 내용보다 표현 기교에 관심을 더 가지고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내적 진실보다 외적 표현의 재미(?)에 치중되어 있는 듯합니다. 시는 예술작품이고 예술작품은 당연히 표현기교가 중요하지요.(그래서 영어의 예술(art)은 그 어원이 기술(ars)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 기술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표현기교, 혹은 표현의 재미에 붙들려 혹시 진실을 놓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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