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화 시인의 <그대 떠나고>에 대하여, > 작품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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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 시인의 <그대 떠나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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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떠나고
박경화
저물녘, 흰나비 한 마리가
내 어깨 스쳐가네
그 잠깐동안의 고요가
온몸을 뒤흔드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누가 떠나가는가
흰나비 스쳐간 자리에
가만히 손 얹어보네


이 시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언어화 되지 않은 여백에 숨기고 있는 생의 의미를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인 <그대>가 떠나고 난 후의 텅 빈 허전함,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실존적인 정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 허전함의 시공을 <저물녘>이라는 시간 안에 감추고 있습니다.
저물 녘이라는 시간은 이제 하루의 시간이 다 지나간, 따라서 모든 가시적인 물상들이 의미의 공간을 넘어서 어둠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퇴장하는 시간입니다. 바로 그 때에 흰나비 한 마리가 어깨를 스쳐갑니다. 여기서 흰 나비는 아주 연약하고 가벼운 존재이지요. 그것은 화자에게는 아무런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화자는 다만 그것이 어깨를 스쳐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물녘에 흰나비 한 마리가 나의 어깨를 스쳐가는>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의미심장한 우주사의 한 장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그의 섬세한 감성으로 절실하게 느낍니다. 나비 한 마리가 지나가는 잠깐의 고요가 자신의 전 존재(온몸)를 뒤흔드는 것은 그래서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그 진실함이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지요.
<그대>가 떠났으므로 한없이 쓸쓸한 것은 아니라고 화자는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 담담하게 버티었을 것입니다만, 나비 한 마리의 스침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대의 부재 공간은 화자에게 그의 존재에 대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누가 떠나가는가>라는 구절은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실존적인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근원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누구나 침묵으로 그 질문을 견뎌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다음 장면에 화자가 <흰나비 스쳐간 자리에 가만히 손 얹어보네>라는 동작이 우주적인 울림을 주는 것입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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